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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론 : 1. 죄의 뿌리 : |
原理本体論は絶対性についても説明されており、生殖器などの用語が何度も登場します。このような内容は基本的に祝福を受けられ、家庭を出発されている方にお話しする内容であり、まだ祝福を受けられていない方、18歳未満の方には不適切な内容と思われますので、該当される方はこの書籍の閲覧をおやめ下さい。堕落論にもあるように、時ならぬときに時のことを知ろうとすることは罪の動機にもなります。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翻訳の部分は管理者のハングルの能力によって作成されておりますので、専門家の翻訳ではありませんので、ご了承下さい。
봄 동산에 돋아나는 풀은 잎을 다 뜯어버리도 뿌리가 살아 있는 한 새싹이 게속 돋아납니다. 우리 인간이 죄를 싫어해서 없애려고 하지만, 죄는 돋아나고 또 돋아납니다. 그것은 죄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없애려면 그 뿌리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인류 최초의 죄를 거론한 것은 성서입니다. 성서의 창세기 2장과 3장을 보면, 하나님이 아담과 해와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선악과)는 먹지 말라. 내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는데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그 성구대로라면 선악과를 따먹은 사건이 죄의 뿌리, 곧 원죄입니다.
【翻訳】
春、小山に芽生える草は、葉をみなちぎってしまっても、根が生きていると一つの新芽が続けて芽生えます。私たちの人間が、罪を嫌ってなくそうとしても、罪は芽生えて、また芽生えます。それは罪の根があるためです。罪をなくすためには、その根を抜き出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
人類で最初に罪を取り上げ論じたものは聖書です。聖書の創世記2章と3章を見れば、神様がアダムとエバに
죄의 뿌리를 뽑으려면 먼저 선악과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선악과를 놓고 많은 사람(기독교인)이 문자 그대로 과실이라고 주장합니다. '선악과'의 '과' 자가 열매 '과'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선악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내용을 잘 분석해 보면, 선악과가 문자 그대로의 과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에덴동산에는 아담과 해와 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하나님이 따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신 계명을 어기고 굳이 그것을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翻訳】
罪の根を抜こうとするなら、まず善悪を知る木の果の正体を分か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善悪を知る木の実を置いて、多くの人(キリスト教徒)が文字通りに、果実だと主張します。'善悪を知る木の実'の'実'の字が'実'であるためです。聖書でも明確に善悪を知る木の実は、善悪を分かるようにする木の実だといいました。しかし、聖書の内容をよく分析して見れば、善悪を知る木の実が、文字通りの果実ではないという事実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
当時、エデンの園には、アダムとエバの二人しかいなかったのです。彼らは、いくらお腹がすいても、神様が取って食べれば死ぬと警告された戒めを破って、あえてそれを取って食べはしなかったでしょう。
아담과 해와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을 지경에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음을 무릅쓰고 따먹은 것이 과일이라면 그것은 납득이 안 됩니다. 사람은 살기 위해서 먹지, 죽기 위해서 먹지 않습니다. 따먹으면 죽는 줄알면서 선악과를 따먹었다면, 그것은 자기 생명보다 더 가치 있는 어떤 것이라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9장 25절에 예수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목숨이 천하보다 더 귀하다는 뜻입니다.
【翻訳】
アダムとエバが食べるものがなく、飢えて死ぬ状況にあるのでもないのに、死を押し切って取って食べたものが果物ならば、それは納得できません。人は生きるために食べるのであって、死ぬためには食べません。取って食べれば死ぬと思って、善悪を知る木の実を取って食べたとすれば、それは自分の生命より、さらに価値ある、どのようなものなのかという意味です。
ルカ福音9章25節にイエス様は'人が万一、天下を得たとしても、自分を失い、奪われてしまえば、何の得があろうか?'とおっしゃられました。私の命が、天下よりさらに尊いという意味です。
그렇게 귀한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따먹을 사람은 없습니다. 이 지구상의 어떤 과일도 천하보다 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는 생명 이상의 가치를 지닌 어떤 것으로 봐야 합니다.
마가복음 7장 15절의 예수님 말씀 보면,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것이니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翻訳】
そのように大切な、命をかけて神様が取って食べないでくれと言われた善悪を知る木の実を、取って食べる人はいません。この地球上のどんな果物も、天下よりは尊くありません。それなら善悪を知る木の実は、生命以上の価値を持った、あるものであるとみるべきです。
マルコ福音書7章15節のイエス様の御言を見れば、'何でも外から人に入るものは人を汚すことはできないが、人の中から出るものが人を汚すということなのだ。'と語られました。また、マタイ福音15章11節には'口に入るものが人を汚すのではなく。口から出るものが人を汚すということだ。'という御言もあります。
성서에는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가렸다(창세기 3장 6-7절)고 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었습니다. 만일 선악과가 나무의 열매었다면, 틀림없이 손으로 따서 입으로 먹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죄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선악과가 먹는 과일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선악과는 문자 그대로 복숭아나 포도나 사과와 같은 열매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翻訳】
聖書には、アダムとエバは善悪を知る木の実を取って食べ、目が良くなり、自分たちが裸であるのを知って、イチジクの葉でスカートを作って覆った(創世記3章6-7節)のです。彼らは明確に善悪を知る木の実を取って食べて、罪を犯しました。万一、善悪を知る木の実が、木の果実だとすれば、まちがいなく手で取って口で食べたでしょう。
イエス様も、口に入るものは罪にはならないといいました。その言葉は善悪を知る木の実が、食べる果物でないという意味です。イエス様の御言を信じるならば、善悪を知る木の実は、文字通りの桃やブドウやリンゴのような実ではないと考えることができます。
하나님께서 아담, 해와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얼마나 말을 잘 듣는지를 시험하기 위해서 그런 말씀을 주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부모가 자식의 성숙 여부를 시험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걸고 자식을 시험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눞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끾지 아니하며 께저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이사야 42장 1-3절)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을 놓고 하신 말씀이지만, 그가 그렇게 자애로운 것은 하나님의 신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翻訳】
神様がアダム、エバがどれくらい成長したのか、どれくらい話をよく聞くのかを試験するために、そのような御言を下さったという主張もあります。もちろん父母が子供の成熟の有無をテストしてみることはできます。しかし、命をかけて子供を試験する父母はいません。神様は愛の神様です。
聖書を見れば神様が'私の選んだ人を見よ、私が私の神を彼に与えた、すなわち彼が国々に公議を施すだろう。彼は叫ばず、声を上げず、ちまたにその声を聞かせない。彼はいたんだアシを折ることもなく、くすぶる燈心を消すこともなく....'(イザヤ42章1-3節)という御言があります。それは神様が選んだ人を置いて語られたれた御言ですが、彼がそんなに慈愛深いのは、神様の神を受けたためというものです。
이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은 목숨을 걸고 무자비하게 인간을 시험할 분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게 해서 자녀가 선악과를 따먹고 죽었다면 그 책임은 부모가 져야 합니다.
성경의 중요한 부분은 모두 비유와 상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죄의 뿌리가 된 선악과도 비유나 상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신학계에서는 선악과가 과일이냐, 아니냐를 놓고 관심이 큽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翻訳】
この御言を見ても、神様は命をかけて無慈悲に人間を試験する方ではありません。万一、そのようにして、子女が善悪を知る木の実を取って食べて死んだとすれば、その責任は父母が負わなければならないのです。
聖書の重要な部分は、全部、比喩と象徴になっています。それなら、罪の根になった善悪を知る木の実も、比喩や象徴だと見なければなりません。今日、神学界では善悪を知る木の実が果物か、違うのかを置いて、関心が大きいです。しかし、誰もそれを明快に説明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
죄에 대한 문제는 어떤 한 종교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역사 속의 갈등과 대립을 야기한 근원적 문제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죄의 근본 문제를 알고 그것을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종교적인 차원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선악과에 대한 문제가 확실히 밝혀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형제가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하고 묻는 베드로에게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찌나라.'하시며 일흔 버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담, 해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한 이후, 용서는 커녕 에덴동산에서 곧바로 추방했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도 용서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翻訳】
罪に対する問題は、ある一つの宗教にだけに限定された問題ではなく、歴史の中の葛藤と対立を引き起こした根源的問題です。人間ならば誰でも、罪の根本問題を知って、それを解決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したがって、この問題は宗教的な次元の問題だけではありません。それならば、善悪を知る木の実に対する問題が正確に明らかにならなければなりません。
マタイ福音18章22節を見れば、イエス様は’兄弟が罪を犯せば、何度、許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か?'と尋ねるペテロに'七回だけでなく、七十回ずつ七度でもしなさい.'と言って、七十回を七度でも許して怨讐を愛しなさいとおっしゃられました。
ところが、神様はアダム、エバが善悪を知る木の実を取って食べて堕落した以後、赦すことはおろか、エデンの園を直ちに追放しました。そこには、神様も赦すことができない、深刻な問題があると見なければなりません。